바로크 - 화려한 시대
바로크 미술(1600~1750)은 르네상스 미술의 진보된 기술, 마니에리즘의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요소, 그리고 웅장한 스케일이 결합된 시기로, 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독창적인 시기로 꼽힌다. ‘바로크’라는 단어는 종종 과장되거나 허세를 부린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바로크 시대는 램브란트와 벨라스케스와 같은 예술적 천재들을 배출했으며, 미술의 영역을 일상생활로 확장시킨 중요한 시기였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가들은 로마 유학을 통해 고전 유물과 르네상스 걸작을 공부하고, 이를 자국의 문화적 특성과 결합하여 새로운 미술 양식을 창출했다. 이탈리아의 사실주의에서 프랑스의 화려한 불꽃 양식(flamboyance)에 이르기까지 바로크 양식은 매우 다양했으나, 감동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고도의 감수성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크 미술은 1600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반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로마 교황청은 대규모 성당과 예술 작품을 통해 신자들을 압도하고 종교적 권위를 과시하려 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양식은 프랑스로 전파되었고,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에서는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이 왕권의 위엄과 부를 상징했다. 플랑드르와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는 종교 미술이 절정에 달했지만, 네덜란드와 영국 같은 신교 국가에서는 종교적 제약으로 인해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등 세속적인 주제를 다루는 그림이 인기를 끌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카라바조 - 현실적 종교화의 대가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 카라바조(1571~1610)는 기존 마니에리즘의 인공적인 양식을 배격하고, 사실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인물 묘사를 통해 종교화를 재창조했다. 그의 작품은 성자를 보통 사람처럼 그리고 기적을 일상적인 장면으로 표현하며, 당시 종교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대표작 <성 마태오를 부르심>에서 카라바조는 마태오가 돈을 세는 건달들과 술집에 앉아 있다가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강렬한 대각선 빛은 사건의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며 관객을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다. 또 다른 작품인 <엠마오의 저녁식사>에서는 부활한 그리스도임을 알아챈 사도들의 놀라움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의 명암법(키아로스쿠로)은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며, 관객의 시선을 그림 속 사건으로 집중시킨다.
카라바조는 종교적 주제를 하층민의 관점에서 표현하며 반종교개혁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당대에는 천박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살인과 폭력 사건에 연루된 문제적 인물이기도 했으나,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같은 동시대 거장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혁신적 화가로 평가받는다.
베르니니 - 바로크 조각의 정수
베르니니(1598~1680)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는 조각에 역동성과 극적인 감정을 담아내며, 관객을 작품 속 감정과 움직임에 몰입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초기 대표작 <다윗>은 돌팔매를 던지기 직전의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정적인 <다윗>과는 대조적이다.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환희>는 그의 걸작으로, 성 테레사가 천사의 화살에 가슴을 꿰뚫리며 신의 은총에 취하는 환상을 조각으로 표현했다. 대리석으로 조각된 성녀의 표정과 드라마틱한 구도는 관능성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전달하며, 예배 공간 전체를 하나의 종교적 드라마로 변모시킨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
베르니니는 생애 동안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위해 여러 작업을 진행하며 이 웅장한 건축물에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대성당 내부의 중심에는 성 베드로가 묻힌 장소를 감싸고 있는 중앙 돔이 위치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베르니니가 설계한 거대한 청동 제단, 발다키노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발다키노는 무려 10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규모로, 나선형으로 조각된 4개의 청동 기둥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기둥을 감싸고 있는 포도, 포도잎, 꿀벌 같은 장식적인 부조는 나선형으로 정교하게 얽혀 있으며, 닫집 형태의 덮개는 천사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 모든 요소는 바로크 양식 특유의 화려함과 감동을 극대화시키며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발다키노의 제단은 단순한 목재로 제작되었으나, 성 베드로의 발판과 주변 장식은 다양한 재료와 혼합 기법으로 더욱 화려하게 꾸며졌다. 제단 위를 장식하는 구조물은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비상하는 천사들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천상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금빛을 투과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은 작품 전체를 환상적인 분위기로 감싸며 신성함을 극대화한다.
대성당 외부에는 베르니니가 설계한 웅장한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광장은 타원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를 둘러싸고 4개의 열주가 나란히 배열된 이중 주랑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베르니니는 이 공간을 “어머니가 자녀를 품에 안는 모습”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이 아케이드는 순례자들이 대성당에 접근하는 동안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으며, 방문자들에게 대성당의 웅장함과 신성함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베르니니의 설계는 단순히 건축적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신성함과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낸 바로크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형태, 색채, 빛의 조화를 통해 공간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보로미니 - 혁신적인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1599~1667)는 바로크 건축의 혁신가로, 복잡하고 유기적인 구조를 통해 건축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그의 대표작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는 곡선과 역곡선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벽면 설계를 통해 건축물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형태로 표현한다. 보로미니는 건축의 외형뿐 아니라 내부 공간의 유기적 통합을 중시하며, 바흐의 음악처럼 찬양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건축물을 설계했다.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야 -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화가 (0) | 2024.12.05 |
---|---|
신고전주의 미술: 고전의 열기 (0) | 2024.12.02 |
르네상스 미술(3) : 북유럽 르네상스 (0) | 2024.11.20 |
르네상스 미술(2) : 이탈리아 르네상스 (0) | 2024.11.20 |
르네상스 미술(1) : 근대 회화의 시작 (0) | 2024.11.18 |
중세 미술 :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미술 (0) | 2024.11.17 |
로마 미술과 건축 : 현실성과 위대함의 미학 (3) | 2024.11.17 |
그리스 미술 (1) | 2024.11.17 |